
일본의 유명 문화재 금각사는 두번의 화재를 겪었습니다.
첫 방화, 오닌의 난
처음 금각사가 불 탄 것은 1467년이었습니다.
무로마치 시대의 장군 중 한 명인 아사카가 요시미츠가 세웠던 금각사는, 이후 그의 후계자인 아사카가 요시마사가 돌연 은퇴를 발표하면서 오닌 원년에 오닌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요시마사의 은퇴로 인해 그 후계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면서 전쟁이 발발했고, 이는 전국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교전 세력 중 서군이 금각에 불을 놓아 일부 소멸되게 되었고, 이는 에도 시대에 들어서야 수리됩니다.
두번째 방화, 하야시 사건

금각사가 두번째로 불 탄 것은 1950년의 일이었습니다.
1950년 7월 2일 금각사로부터 화재 경보기가 울렸습니다. 이를 감지하고 일본의 소방대가 출동하였지만, 출동한 그들이 보게 된것은 이미 전소상태에 들어가 거멓게 변하고 있는 사찰이었습니다. 소방대는 당연히 금각사를 살릴 수 없었고, 그 자리는 검은 잿더미로 돌아가게 됩니다.
금각사를 태운 범인은 하야시 쇼켄이라는 견습 승려이자 불교 학원인 오오타니대학의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화재 직후 승려 한 명이 행방불명이라는 신고를 받고 주변 수색에 나선 일본 경찰에 의해 근처 야산에서 발견되었으며, 자결을 기도하기 위해 약을 투여하고 스스로 배를 가르려 했던 흔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추후 밝혀진 바로 그는 조현병의 증세를 보여 7년형을 선고받고 형기 중에 옥사하였습니다.

당시 일본 국보의 지위를 가지고 있던 금각사는 사건 이후 바로 재건축에 들어갔습니다. 금각사가 지금의 형태로 다시 지어지게 된 것은 금각사가 불 탄 5년 후인 1955년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금각사의 도면이 메이지 시대에 기록되어 있어서 재건축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기존의 옅은 노란색을 띄는 고풍스러운 금각사는 없어졌고, 다시 들어선 건물은 화려한 금색을 띄게 되었습니다.
이 방화로 인해서인지 금각사는 결국 국보에서 중요 문화재로 한 단계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일본 유명 소설가이자 추후 우익 활동가로 큰 족적을 남기게 되는 미시마 유키오는 해당 방화 사건의 동기를 "미적 존재에 대한 탐미와 열등감으로 인해, 진정한 미인 금각사를 태워버림으로써 그 반감을 끝냈다" 는 범행동기의 재해석을 소설 금각사에 녹여냅니다.
현대의 금각사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정원과,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금각사는 일본의 2차 대전 종전 이후 주변국의 전쟁 특수와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관광수요가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일본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일본 교토 금각사 킨카쿠지 - 일본 여행 교토 명소
소개 일본 교토의 명소이자 전통 문화재 금각사를 소개합니다. 금각사의 정식 명칭은 로쿠온지(鹿苑寺) 이지만, 금색으로 도금이 된 아름다운 사찰 덕분에 금각사 (킨카쿠지) 라는 이름으로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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